<때론 어떤 위해는 무해하다>, 2021, 단채널 영상, 6’ 44”
작업은 하나의 게임으로부터 출발한다.
파이팅 몽키라 불리는 이 게임은 현대 무용수를 위한 훈련의 일종으로, 두 명 이상의 참가자를 필요로 한다.
참가자들은 한쪽 발로만 균형을 맞추고 선 채, 나머지 발과 두 손을 이용하여 차례로 서로의 몸을 천천히 민다.
참가자는 외발서기의 균형을 유지한 채로 상대방에게 움직임을 가하고, 본인에게 가해진 움직임을 견뎌야 한다.
균형 유지를 실패한 쪽이 게임에서 지게 된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전제는 다음과 같다.
상대방에게 가하는 움직임은 천천히, 과하지 않은 힘으로 행해져야 하며, 움직임을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그 움직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본 게임은 훈련을 목적으로 하며, 승패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외발로 선 채의 개인들이 움직임을 주고 받으며 결과적으로는 개인이 외발로 서는, 스스로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외발로 균형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개인에게 본 게임의 상대 참가자는 위해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나의 자립을 위한 위해이기도 하다.
내가 견고히 서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우며 함께 흔들리는 위해이다.
영상작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아무도 없는 높은 고도에서 홀로 외발로 서 있다가 바람에 의해 낮은 평지로 굴러 떨어진다.
높은 고도와는 달리 낮은 평지는 수많은 위해의 요소가 산재해있고, 주인공은 외발서기를 방해받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위해인줄로만 알았던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여 앞서 말한 파이팅 몽키 게임을 진행하게 되고, 주인공은 어떤 위해는 자신의 자립을 돕는 것임을, 때론 어떤 위해는 무해함을 느낀다.
개인과 개인 간 존재하는 불신은 서로를 위해의 대상으로 판단하고 격리한다.
개인은 각자의 높은 고도를 찾아, 본인의 규칙과 질서 안에서 삶을 영위하려 한다.
그러나 어떤 관계는 위해가 아니며, 오히려 서로의 건강한 자립을 돕도록 기능한다. 때론 어떤 위해는 무해하다.
한쪽 발로 서로를 열심히 밀어대는 우리를 떠올린다.
넘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닌, 나와 함께 끝까지 서 있기를 바라는 움직임들을 떠올린다.
서로를 열심히 밀어대고 충격을 가하면서 상대가 굳건하게 건재하기를 바라는 움직임들을 떠올린다.